○일주일간 지친 몸을 일으켜 새벽바람을 헤치고 나서는 길은 여전히 무겁습니다. 하여 버스에 오르자 마자 잠에 곯아떨어지는데 그 와중에도 정선에 대한 아련히 묵은 향수가 무거운 눈꺼풀 사이로 오갑니다. 그 구절양장의 강원도 길을 헤쳐 다가간 아우라지강가의 아침풍경, 5일장에서 맛보던 콧등치기국수의 재미, 전화도 터지지 않는 외진 산골 오지에서의 하룻밤.. ○ ○정선 땅에 들어서니 부쩍 차가워진 공기가 상쾌하게 날 반깁니다. 정말 싱싱하고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드는 정기가 느껴집니다. 그렇게 국보를 품고 있는 고즈넉한 정암사를 시작으로 1박2일의 일정이 알차게 시작되었습니다. 여러 일정 중에 특히 날 기쁘게 한 것은 먼저,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려 보내던 향교와의 새로운 만남이었습니다. 28년전 봄날, 다사로운 햇살 가득한 청주 향교의 잔디밭에서 혼례를 올린 우리 부부가 정말 그 긴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향교 마당에 설 수 있다니 놀라운 인연이고 회상이었습니다. 그날의 봄볕을 닮은 초겨울 햇살이 가득하게 퍼진 정선 향교에서 독특한 체험을 하는 내내 저는 오래전 그날의 새신부이던 시간을 떠올렸습니다. 마당 한 켠에 서서 잔잔한 화음으로 축가를 들려주던 남편의 동아리분들, 잔디밭에 펼쳐진 음식상에 둘러 앉아 완전 시골식 국수를 따끈하게 드시며 덕담을 주시던 여러 하객분들, 눈물 나도록 그립고 아름다운 시절의 회상입니다. ○ ○남편은 당초 일정표에 나왔던 '몰운대'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. 전 기억이 잘 안나지만, 남편이 들려준 황동규 시인의 詩 한 구절을 들어보니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일지 짐작이 되었습니다. <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.> 거기에 덧붙여 남편은 "영화 '번지점프를 하다'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그 너른 풍경을 굽어보노라면 아무 망설임 없이 그 투명한 허공으로 사뿐히 날아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이 피어나는" 명소였답니다. 그런데, 그 멋진 곳을 코로나로 인한 숙소 변경으로 부득이 갈 수 없게 되었다하니 남편의 실망이 적지 않았습니다. ○ ○하지만, 전화위복이라더니 정말 이럴 수가! 그 변경된 숙소에 가보니 이름하여 '옥산장'. 어머나, 옥산장이라면 그 옛날 신혼 시절,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시어머님께 아이를 맡겨두고 한적하게 여행을 떠나 묵었던 바로 그 곳이었답니다. 당시 곧 운행을 멈추리라는 청량리발 꼬마열차를 타고 이 굽이치는 강원도 산골 깊은 곳 정선하고도 여량의 아우라지 강가에 찾았었지요. 손에 들고 간 유홍준 님의 명저 '나의 문화유산 답사기'를 길잡이 삼아 전옥매 아줌마를 만나고 밤 늦도록 두런두런 많은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아련합니다. 그 긴 세월을 넘어 다시 찾아간 옥산장에서는 짧은 일정 탓에 전옥매 할머니를 만날 수도 없었고, 크게 확장된 사세(社勢)로 옛 옥산장의 모습을 더듬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 먼지 뽀얗게 쌓인 추억의 공간이 이렇게 건재하여 반겨준다는 사실은 더없이 눈물겨운 행복의 순간이었습니다. ○ ○그 외에도 이번 일정은 잔잔한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. 시골이라 해도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현대식 건물들 틈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'상유재'와 그 주인장을 만나 가문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가슴 뿌듯한 감동의 자리였습니다. 정선 향교 프로그램 말미에 깜짝 정선아리랑 공연무대를 선사해 준 분들의 노래실력은 매우 출중했는데 인생을 달관한 분들이 풀어내는 한의 가락은 듣는 순간 가슴을 파고도는 기분이었습니다. 그 멋진 공연을 달랑 우리 20여명이 감상한다는 것은 영광이자 미안한 일이기도 했습니다. ○ ○화암동굴은 그간 다녀본 어느 동굴보다 규모나 관람시설, 스토리텔링에서 훌륭한 작품이었어요. 특히 관람코스 말미의 광장은 그 엄청난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지더군요.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고 걸어 내려오는 구조도 참 좋았답니다. 그리고 마지막 일정이었던 '아리랑 극 공연', 와 정말 이건 대박입니다. 서울에서 여러 공연을 보았었지만 결코 여느 것에 뒤쳐지지 않았고,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어우러져서 감동의 도가니탕을 서너그릇 완샷한 느낌, 덕분에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답니다. ○ ○끝으로, 여정 내내 버스에 동승하여 정선지역의 미주알고주알을 참 다정다감하고 매끄러운 음색으로 안내해 주시던 이름모를 가이드님(강원도 철원에서 정선으로 시집오셨다던데..^^)과 후덕하게 분위기를 풀어주시던 항교의 대표이신 전교님(사진속 붉은 도포 입으신 분) 고마웠구요, 일정중 맞은 4끼의 식사 모두 순위를 매길 수 없을만치 훌륭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최고의 강원도 정선 상차림이었음을 확인합니다. 이 가슴 따듯한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, 그 맛난 식사를 또 마주할 수 있다면, 그리고 옥산장에 다시 찾아가고 '몰운대'를 둘러볼 수 있다면 다음 여정도 무조건 무조건 콜입니다. ^^ ○ ○가슴 벅찬 이 멋진 여정을 선물해준 여행공방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. 여행공방 최고입니다. ♡♡♡♡♡